나의 서재/인문:나와 대한민국 & 지구촌의 역사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놓치다

3.0CEO 2007. 12. 16. 18:05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다 손이 휑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상당기간 읽던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을 어제로 손을 놓았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오랜만에 서점을 들러 보기로 했다. 출근 시간인 만큼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새로 출간된 좋은 책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인기 과목이 된 경제학과 경영학 등이 학문으로 성립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 두 학문의 발전으로 우리는 복잡한 경제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국가와 기업의 경영자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나 경영학이란 우리 사회를 보는 하나의 시각일 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경제학, 물리학, 생물학 등 많은 학문이 이루어 낸 성과를 모두 이용해야 한다.

 

한 사회의 경제 발전이 통화나 금리정책 또는 재정정책으로만 이루어 질 수는 없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경제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신뢰하는 사회에서 경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설득력있게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제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이기는 하지만, 인문학의 기초가 없이는 이 사회의 경제현상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자신만의 분야에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어 놓고 그 학문을 즐겨온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수학을 이용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  그 게임에서 서로 대가임을 증명하는 놀이에 빠져 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이제 심리학등 다른 학문의 성과를 경제학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더 현실감있는 이론이 나오고 있다.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매우 당연한 일이다. 결국 연구의 편의상 분류된 것이지 학문의 이름 자체 처럼 사회현상이 폐쇄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현실은 다른 시스템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처럼 학문 그 자체도 닫혀있어서는 안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인문학을 바탕으로 경영학도 발전할 수 밖에 없으니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는 것 역시 당연한 말이다.

 

서점에 서서 서문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저자는 인문학 그 자체가 통찰의 힘이라고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의 문제를 '분석의 힘은 커졌지만, 통찰의 힘은 사라져 버린' 현실에서 찾는다. 저자 스스로 경영학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이 세상을 보는 통찰은 인문학만으로도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경영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것조차도 저자가 이해하는 인문에 포함되어야 진정한 통찰의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통찰이란 많은 지식의 융합으로 이루어 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파라다임은 인문학 뿐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의 연구결과와 연구 방법론까지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우리의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학문의 성과를 두루 이해해야 진정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문장, 역사, 철학을 인문학의 본령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은 박제화된 관념의 집합이 아닌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의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인문학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 진정한 인문학이 있다고 강조한다. 좋은 책을 만났다 싶다.

 

얼른 책을 사들고 전철에 올라탔다. 그리곤 재빨리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책의 시작을 중국 청나라의 초기 황제 강희제로 선택했다. 인문학이 다름아닌 문장, 역사, 철학이니 역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정말 자연스러운 것같다. 그리고 어떤 형식의 글이던 재미라는 것은 소중한 덕목이다. 그런데 강희제에서 시작한 역사이야기는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면서 32페이지를 채워내고 있다. 실망스럽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계속 읽어 나갔다. 저자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글들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소제목은 창의성, 디지털, 스토리, 욕망, 전쟁, 모험, 역사 그렇게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내용과 주제는 점점 일관성도 그리고 인문에서의 경영도 잃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역사에서는 로마의 역사를 요약하는 성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35페이지에 걸쳐서 말이다.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4대 장군에 관한 인물전 40페이지 그리고 남극탐험의 섀클턴에 관해 20여페이지, 351페이지의 본문에서 이런 류의 글이 반이상을 차지하고 말았다. 나름대로의 해석이라고는 앞 두로 한두 문장을 첨가하기는 하였다. 그런 문장에서 경영을 만나기는 너무 어렵다. 어느 기자의 글에서 행간을 읽어내야 한단다.  그런 능력이 나한테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간단한 양식을 먹을 때의 매너도 소개한다. 냅킨과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할 때 유의해야 할 매너를 말이다.

 

아 정말 너무하다. 왜 우리들의 말과 행동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제 우리도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