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통섭:지식의 재구성

생각이라는 자원

3.0CEO 2007. 1. 30. 10:27

집은 지혜(wisdom)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understanding)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knowledge)으로 말미암아 각 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잠언24:4)

 

기업은 우리를 포함한 인적자원, 현금과 같은 재무자원, 생산을 하는 기업이라면 생산자원 그리고 지적자원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는 생각이라는 자원이 하나 더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모든 개인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기업의 리더에게 생각이라는 자원은 더욱 중요해 진다. 우리 자신은 물론 구성원들의 생각이 기업의 문화를 만들고 업무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원이다. 지적자원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생각이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무제한적인 자산이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교육과 자기개발을 위한 독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명상 등 이 모두 생각이라는 자산을 관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사고-思考)이란 무엇일까? 이 말처럼 쉽지만 또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도 없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머리를 써서 궁리하다.’라는 궁색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 생각을 그냥 추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그야말로 우리들의 생각이다.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라는 일본의 의사가 쓴 『뇌내혁명(腦內革命), 1996』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기본 메시지는 긍정적인 생각만으로도 사람은 병을 예방할 수 있고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생각이라는 것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뇌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이라는 견해다. 사실 이제 물리학자들이나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내고 있듯이 뇌 생리학자도 또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불리는 우리의 뇌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생각은 뇌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것을 그 결과로 알아 차릴 수 있다. 분노와 적대감은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혈압을 증가시키며, 얼굴을 상기시킨다. 불안감에 사로잡히면 식은땀이 흐르고, 입에 침이 마른다. 공포에 질리면 하얗게 질리면서 온몸에 힘이 빠진다. 몸 안의 세포들이 순간순간 마음을 물질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화학적인 메시지로 전환한다. 이에 대하여 하루야마 시게오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근심, 걱정, 분노, 불안 등의 마이너스 사고는 뇌 속에서 노루아드레날린 (Noradrenalin)을 분비시키고, 공포는 아드레날린(Adrenaline) 을 분비시킨다. 이들 물질은 무서운 유독물과 같아서 병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플러스 사고로 생각하면 베타 엔돌핀 (β-Endorphin)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젊음을 유지시키며 암세포까지도 해치운다. 플러스 사고는 마치 체내 제약 공장처럼 순식간에 면역력 있는 양약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생각의 결과다. 즉 생각이 화학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다. 위에서 이야기 하는 베타 엔돌핀 (β-Endorphin)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르핀' 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르핀은 일종의 마약으로 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뇌에서 만들어지는 베타 엔도르핀 즉 '뇌내 모르핀' 은 독성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효력은 마약인 '모르핀' 의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창조주는 우리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우리 인간에게 '뇌내 모르핀' 이라는 선물을 주셨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의 플러스적인 생각이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말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원인인 감정과 생각조차도 화학작용일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생각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물질로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며 이제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있게 된다.

 

그 증거로 이제 인간의 정신병이 정신과 의사의 상담으로만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약물로도 치료 될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소비자 이론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뇌의 화학적 전달 물질인 ‘옥시토신’을 주입하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신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도 비교할 수 있다. 인간이 사람을 모델로 컴퓨터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컴퓨터가 사람을 따라오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해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에게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CPU(Central Process Unit-중앙처리장치)처럼 기억하는 곳과 생각하는 장소가 따로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에게도 생각과 기억은 두 개의 다른 활동이다. 사람의 뇌가 생각하는 속도는 10MHz정도라고 한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PC의 CPU가 보통 몇 GHz가 넘음으로 기술적으로는 PC가 우리의 생각속도보다 100배는 빠른 셈이다. 반면, 사람의 기억용량은 100Tb(테라 비트)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 수에 달하는 2,000만권의 책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따라서 보통 PC보다는 우리 인간의 용량이 더 큰 셈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단기기억(Ram: Random Access Memory)과 장기기억(Hard Disk)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컴퓨터와 다른 것은 인간은 가설을 세우고 학습효과를 가지며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용을 하는 장소를 인간은 추가로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왼쪽 뇌는 논리적 및 언어적 기능을 맡고 있고 오른쪽 뇌는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기능을 맡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왼쪽 뇌가 컴퓨터의 CPU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 왼쪽 뇌는 오디오(언어)고 오른쪽 뇌는 비디오(화면)라고도 한다. 왼쪽 뇌는 분석하고 오른쪽 뇌는 종합한다. 왼쪽 뇌는 논리적, 수학적 뇌이고 오른 쪽 뇌는 감정적인 일을 한다. 따라서 비록 PC가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인간보다 똑똑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오른쪽 뇌 때문인 셈이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우리는 오른 쪽 뇌를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논쟁과 측정, 그리고 논리가 중요시 되는 반면 창조적이고, 직관적이며, 예술적인 측면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PC보다 똑똑하기 위해서라도 연산이나 분석은 PC에게 아웃소싱하고 우리는 오른 쪽 뇌를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는 왼쪽 뇌를 훈련시켜 논리적, 분석적, 전략적 사고도 해야 하고  오른쪽 뇌를 활용하여 긍정적이고 창의적 사고도 훈련해야 한다.

 

하루야마 시게오는 이러한 의견에서 좀 더 진보한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확장된 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가 뇌내혁명에 기록한 내용을 직접 들어보자.

 

“좌뇌는 언어를 구사하고,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며, 희로애락까지도 표출하고 있다. 그럼 우뇌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먼저 종래의 학설 중에서 우뇌의 창조성 인자인 감성, 직감력 그리고 도형 인식 등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우뇌에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감추어져 있다. 인간의 우뇌 속에는 과거 인류가 쌓아 온 지혜가 유전자 정보로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우뇌를 인류가 축적해 놓은 지혜를 전달하는 ‘선천뇌’라고 생각한다. 즉, 우뇌에는 선조가 물려준 모든 정보가 유전자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좌뇌 역시 이성과 감정의 양쪽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좌뇌는 그 사람이 태어나서 현재까지 살아온 정보가 입력되어 있는 ‘자기뇌’가 아닐까?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선 우뇌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인류 5백 만년에 해당하는 유전자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본능이나 자율 신경계 활동, 도덕, 윤리관 그리고 우주의 법칙까지 포함하여 인류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은 최적의 생존 정보가 모두 저장되어 있는 곳이 우뇌이다.

 

우리는 좌뇌로 받아들인 자신의 감각을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나는 마음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슬기로운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해 타산에 밝은 우리가 마음을 인류의 공통 분모로 여길 리가 없다. 가령 명상을 하여 뇌가 일정 상태에 도달하면 마음이 말을 걸어온다. 이것이 바로 ‘우뇌에 저장된 힘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경우 대개 감정을 마음으로 잘못 알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이자 철학자였던 C. S. 루이스(C. S. Lewis, 1898-1963)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1952』에 나오는 양심에 대한 설명과도 유사하다. 루이스는 도덕률이나 양심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인류의 공통분모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도덕과 양심을 모두 지키지는 못하고 있기는 하다. 그들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 모두의 오른쪽 뇌에는 똑 같은 분량의 지혜와 같은 종류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