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경제:경제학현실에 말을 걸다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 A FAREWELL TO ALMS

3.0CEO 2013. 3. 1. 22:31

헤밍웨이(Hemingway)의 <A Farewell to Arms(무기여 잘 있거라)>는 소설의 주인공 Henry가 내뱉는 독백이다. 전쟁을 애국, 희생 그리고 영광과 같은 단어로 합리화하는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의 원제 <A Farewell to Alms> 즉 '구호금이여 잘있거라'라는 제목은 아마도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따왔음직하다. 그리고 그레고리 크라크 Gregory Clark 역시 Henry와 마찬가지로 부국의 빈국에 대한 구호금(alms)에 대해 냉소적인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부의 양극화 또는 빈국과 부국의 차이)에 대한 깊은 해석이나 그 해법을 이 책에서 찾기는 어렵다. 이 책의 가치(최소한 나에게는)는 오히려 책의 부제 '세계 경제사 A Farewell to Alms: A Brief Economic History of the World'가 시사하듯이 세계 경제성장과 관련한 풍부한 사료와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며 또 억지로 하나를 더 한다면 산업혁명에 대한 인구통계적 해석 하나를 더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읽혀지지 않는 점까지 더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경제학자나 정책을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는 유익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독서가 되어야 겠지만....보통 사람들에게는 전체를 통독하기 보다는 자료를 찾아 볼 때 필요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어렵게 책을 읽었으니 그 흔적 정도는 남겨두고자 한다. 





1. 저자의 문제제기

저자는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성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전 세계적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확대됐다는 사실을 문제로 제기한다. 따라서 이 책의 부제를 달자면 '세계 경제사' 또는 '산업혁명과 대분기'라고 할수 있을지 모른다. ‘대분기(大分岐)’란 부의 증가가 모든 사회에 고루 확산되지 못하고 서구사회만 집중되어 빈국과 부국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현상을 가리키며 그 시기는 1900년 대 초에 해당한다. 실제로 1900년대 초부터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사회만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오늘날에는 비율이 10대 1에 달할 정도로 국가 간의 소득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저자의 표현대로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부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다.  


2. 경제사

“세계 경제사는 어이없을 정도로 매우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저자 그레고리 클라크의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이 그래프에 의하면 세상은 간단히 맬서스의 덫(Malthusian Trap)에 걸려 있던 세상과 그 덫에서 풀려난 세상으로 나누어 진다. 산업혁명 전까지 8000년 동안 인류는 이른바 맬서스의 덫에 갇혀 있있다. 인구 증가에 가로막혀 인류의 생활은 구석기나 중세 심지어 산업혁명 초기까지도 별 차이가 없었다. 기술적 진보를 통한 소득 증가는 인구 증가 때문에 그 효력이 상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상당히 암울하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맬서스는 '세상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식량자원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빈곤해진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시사하는 전체 '경제모형'을 들여다 보면 세계 경제사를 놀랍게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맬서스 모형은 다음과 같이 간단한 세 가지 가정으로 요약된다.

1. 각 사회의 출생률은 출산율을 조정하는 사회적 관습에 따라 결정되지만 물질생활 수준이 증가 함에 따라 출생률은 증가한다.

2. 각 사회의 사망률은 물질생활 수준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한다.

3. 물질생활 수준은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감소한다.


그리고 저자는 맬서스의 덫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술적 진보의 속도가 맬서스의 덫'이 가지는 핵심이다.  기술적 진보가 누적되어 결과적으로 이것이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더라도 진보의 속도가 너무 더디면 물질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맬서스 경제의 범위 내에 있는 기술적 진보는 인구 증가라는 복병의 방해를 받게 된다."  기술의 진보로 인한 성장이 인구증가를 능가해야만 개인의 소득이 증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맬서스의 덫에 걸린 세상

1800년 이전 인류의 1인당 소득은 사회별로, 또 시대별로 차이가 있었다. 나의 졸저 <경제학 현실에 말을 걸다>에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인류의 삶은 밀림의 사자나 초원의 기린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과 동물 세계에 뚜렷한 경계가 없었던 셈이다. 


"이 모형은 1800년 이전의 세계 경제를 모든 동물 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연 경제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본다.  이 수준에서는 인간과 동물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요인이 없다."


사실 1800년경 사람들은 대다수가 사냥하며 살던 시절의 고대 인류와 비슷하거나 더 가난하게 살았다. 18세기 영국인이나 네덜란드 같은 부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석기시대인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자료에 의하면 석기시대인의 평균수명이 30세였던 것에 비해 1800년경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35세로서 크게 늘지 않았다. 또 신장의 경우 석기시대인이 1800년경 사람들에 비해 더 컸다. 게다가 1800년경 영국의 평균 노동자들이 누리는 것에 비해 석기시대인들이 먹는 음식과 하는 일이 훨씬 다양했다.  수렵채집 사회는 한마디로 평등사회였으며 구성원들간에 물질소비 수준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농경사회였던 1800년도는 불평등이 지배한 사회였다. 극소수의 부자들이 대부분의 물질을 독점하고 있었다.


맬서스의 경제모형에 의하면 이 시대 즉 1800년 이전의 사회에서는 인구를 억제하는 현상이 '선'이며 인구를 증가시키는 발전은 '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 폭력. 무질서, 흉작, 낮은 보건위생 수준과 같은 요인은 인구를 감소시키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전체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주었다. 역으로 평화, 안정성, 질서, 보건위생, 빈곤층에 대한 관심 등과 같이 오늘날 '선'이라고 할 수 있는 요인들은 인구를 증가시키므로 결과적으로 빈곤한 사회를 만드는 '악'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유럽의 경우 도시화 속도가 빨라진 데다 위생 상태도 불량했던 것이 결국은 인구 증가 억제 요소로 작용했고, 따라서 18세기 영국과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청결의식이 강했던 일본의 경우 위생 문제로 인한 사망률이 낮았고, 따라서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여지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경우 생존한 국민 모두가 최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또한 예로 흑사병을 들 수 있다.  13세기 말 유럽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영국인구는 600만 명에서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런데 이 때 1인당 소득은 오히려 급격히 증가해 1860년대의 80% 수준까지 상승했는데 이후 인구가 높아진 소득 수준 영향으로 증가하면서 다시 1인당 소득 수준이 1860년대의 4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산업혁명

인류를 '맬서스의 덫'에서 풀려나게 한 사건은 불과 200년 전에 발생한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왜 산업혁명이 중국과 같은 아시아가 아니고 왜 영국인가? 저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원인을 제도적 정체성과 인구 통계학적 특성에서 찾는다. 물론 책에서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지식의 발전과 '지식폭발'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 하면 그가 말하는 인구 통계학적 특성은 다윈의 '적자생존'과 '지식의 발전'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05~1800년 동안의 영국에서 경제적 성공은 인구 재생산력의 성공과 동일시되었다. 다시 말해 부자의 자식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말이다. 당시 평균 사망율은 50%가 넘어 보통 한 여성이 낳는 자식이 4~5명인데 반하여 생존하는 자식은 평균 2명 정도였다. 헌데 맬서스 시대의 영국사회에서도 가난한 가정의 자녀 생존율은 평균보다 많이 낮아 결국 빈곤 가정은 점차 소멸하게 된다. 반면 부자들이 자식들은 더 많이 생존하게 되었을 것이다. 둘 이상의 자식이 생겨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 부모가 자식들에게 분배해 주거나 물려 줄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경제성장이 부자 자식들이 부모와 같은 수준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국 사회계층 구도상의 '하향 이동' 경향이 꾸준하게 나타나게 된다. 즉 상대적으로 자녀수가 많았던 부유층 가정의 경우 이 자녀들이 나중에 일자리를 찾을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한 단계 낮은 직업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낮은 직업군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류층 가운데도 글을 읽고 표현할 수 있을 뿐아니라 수리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결국 산업혁명은 지식의 발전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꼴이다. 따라서 인구통계학적 시각이 새롭기는 하지만, '집단지성'이나 '지식의 폭발'에서 산업혁명의 원인을 생각하는 내 의견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여하튼 저자는 산업혁명으로 이로 인해 일부 국가에 해당되지만 1인당 소득이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했음을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가장 잘사는 축에 들어가는 국가의 경우 1800년경에 비해 평균 열 배에서 스무 배 정도는 더 잘살고 있으며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비숙련 노동자였음을 강조한다. 이전까지는 토지나 자본을 소유한 부유층과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이 큰 이득을 보았으나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의 혜택이 빈곤층 쪽으로 전파되기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대분기(Great Divergence)

그런데 왜 기술혁신으로 인한 부의 증가가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전파되지 않았는가? 기술이란 의욕만 있다면 쉽게 전파되고 습득되어 지는 것인데도 왜 산업혁명 이후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가 갈라지는 ‘대분기(Great Divergence)’를 경험해야 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그레고리 크라크는 ‘발전 속도의 차이’를 지적하고 '동양이 뒤처졌다기보다 서양의 발전 속도가 워낙 급진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발전속도가 느린 나라는 오늘날에도 '맬서스 시대의 덫'에 걸리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경우 기술적 진보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일조했고 결국 생활을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만 기여했을 뿐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문화적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문화적 요소는 '사회적 환경'과 '노동력의 질'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기술보다 복제가 어려운 것들이다. 결국 원조 또는 구호금이라는 명분으로 단순히 자본이나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만으로 빈국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결코 기술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